내가 삼냥이즈에 합류한지 어언 1년 2개월 정도가 지났다.
그 기간 동안 프리팁스, 초기창업패키지 등을 비롯한 여러 정부 지원 사업을 거치며 회사를 운영해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초기창업패키지 사업도 끝나갈 시점이 되었고, 자연스럽게 삼냥이즈의 런웨이도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로 인해 삼냥이즈 멤버들은 모두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었다. 나를 포함해 창준이와 소정이는 월급도 50만원으로 줄였고, 그마저도 나는 50만원짜리 적금을 넣고 있었기 때문에 여유자금이 조금도 없는 상황이었다. 이 때문에 나는 남은 돈과 그동안 모아두었던 돈을 조금씩 쓰며 최대한 버티고 있던 상황이었다. 허리띠를 아무리 졸라맨다 해도 4개월 이상 이 상태가 지속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심지어 갚아야 할 학자금 대출도 500만원 가량 있는 상황이라 정신적으로 많은 스트레스가 있었다.
마침 그때 정부에서 디딤돌 R&D 사업 공고가 올라왔다.
물론 다른 지원 사업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결과 발표 시기가 올해 하반기였다. 지금 당장의 상황을 고려하면 너무 늦었다. 효빈이와 상우가 새로 들어오고 제대로 합류하기 위해서라도 어느정도의 자금은 필요했다. 그래서 이번 사업의 선정이 우리에게는 그리고 나에게는 정말 절실했다.
우리는 사업장 소재지가 당진이기 때문에 지방청 R&D로 지원했다. 또한 대표인 소정이가 여성 창업자이기 때문에 약간의 가산점도 받을 수 있었다.

1차 선발 과정
하지만 이번 사업은 처음부터 쉽지 않았다.
삼냥이즈는 콘텐츠 기업에 가깝다 보니, 어떤 기술을 R&D 과제로 설정해야 할지부터 고민이 필요했다. 여러 아이디어가 나왔지만, 우리가 기준으로 삼은 것은 두 가지였다.
- 첫째, 연구개발이 필요할 만큼 깊이가 있고, 가치가 있는 기술일 것
- 둘째, 혹시 방향성이 어느정도 바뀌더라도 삼냥이즈의 미래에 무조건적으로 큰 도움이 되는 핵심이 되는 기술일 것
삼냥이즈가 만들고 싶은 것은 단순한 챗봇이 아니라, 사용자와 교감할 수 있는 컴패니언 시스템이다. 그래서 다양한 기술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었다.
하지만 결국 우리가 선택한 연구 주제는 ‘채팅’이었다.
단순히 기억력이 강화된 챗봇이 아니라, AI가 먼저 말을 걸고 관계를 만들어가는 능동적인 대화 시스템이었다.
사실 다른 분야도 가능했지만, 내가 예전부터 이 문제에 대해 많이 고민해왔고 실험적인 코드도 작성해본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제안서를 작성하기 가장 현실적인 분야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적극적으로 이 방향을 밀어붙였다.
처음 제안서 초안은 대표인 소정이가 작성했다. 하지만 기술적으로는 아직 경험이 부족한 팀이었고, 그 안에서도 소정이는 기술보다는 기획 쪽에 더 집중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혼자 작성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도와주시는 교수님께서 제안서를 보시고 여러 조언을 주셨고, 팀 내에서 채팅 기술에 대해 가장 오래 고민해온 사람이 나였기 때문에 결국 내가 기술 파트를 중심으로 초안을 작성하고, 소정이가 그것을 다듬고 수정하는 방식으로 진행하게 되었다.
나는 꽤 오랜 시간 동안 채팅 시스템에 대해 고민했고 여러 실험적인 시도를 해왔지만, 막상 제안서를 쓰려고 하니 생각보다 막막했다.

다른 팀들의 사례를 찾아보니 대부분 기술 기업이었고, 박사 학위를 가진 연구자들이나 해당 산업에서 오래 일해온 사람들이 지원하는 경우가 많았다.
박사 학위가 주는 신뢰감도 무시할 수 없다는 내부적인 판단으로 주변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박사 분들이 있는지 연락을 돌려보기도 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았고, 결국 우리는 학부생 팀, 그것도 아직 졸업도 하지 않은 학생들로 구성된 팀으로 지원할 수밖에 없었다.

제안서는 몇 번이나 수정되었다.
처음 내가 작성한 초안을 교수님께 보여드렸을 때는 여전히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소정이가 다시 전체 구조를 정리하고 시각 자료를 보완했고, 창준이가 핵심 기술 파트를 다시 보완하면서 조금씩 완성도를 높여갔다.
사실 나는 졸업을 앞두고 있어기에 졸업요건인 토익과 토익 스피킹을 따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 때문에 2주간 일요일마다 공부를 조금씩 하려고 했는데 지원서류를 쓰느라 공부는 커녕 잠도 제대로 못잤다. 결국 토익을 못땄다...졸업 할 수 있을까

아쉽게 못맞춘것도 아니고 시원하게 못맞춰서 아쉽진 않다. 친구들이 지금 가도 붙는다, 공부 안해도 붙는다 그랬는데 걍 부끄럽다
시험 보면서도 망했다고 느낀게 읽을게 엄청 많았다. 시험 끝나기 30분 전에는 거의 포기하고 남은 리딩 문제가 몇개인지 세고 있었다.
결국 남은 문제들은 한줄로 찍고 나왔다. 요행을 바랬지만 총점 685점으로 깔끔하게 떨어졌다.
중앙대학교 졸업 기준이 750점인데 공부를 하면 그 시간 안에 리딩 문제를 풀어서 맞출수 있을까...? 한번 시험 쳐본 소감으론 왠지 쉽지 않을것 같다...
그래도 내 토익 시험이 제물이 된 것일까. 다행히도 우리는 1차 평가를 통과했다. 우리는 기술 기업이 아닌 콘텐츠 기업이라는 점, 연구 인력이라고 할 만한 사람들이 부족하다는 점 등 불리한 요소들이 있어 1차 통과도 쉽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어느정도 숨은 돌릴 수 있었다. 이 사업은 1차 평가로 1.5배수를 선발하는 구조였기 때문에, 선정 확률이 많이 올라갔고 최소한 발표 기회는 얻은 것이다.
2차 선발 과정
2차는 발표 평가였다.
발표심사를 받기 위해 세종시에 방문해야 했고, 소정이와 창준이가 발표장소로 향했고 나는 동행하지 않았다.
소정이는 자차로 운전해서 발표 장소로 갔는데 주차 공간이 마땅하지 않았다고 한다. 한참동안 공간을 찾다 발표 직전이 됐음에도 공간을 찾지 못해 아무데나 세워두고, 사정과 연락처를 종이에 써서 차에 붙여놓고 발표를 하러 갔다고 했다.
여기서부터 뭔가 느낌이 안좋았는데 그러던 중 주최측으로부터 시간이 됐는데 왜 발표장에 안오냐는 연락을 받았다고 했다. 기존에 공지된 시간보다 15분 정도 이른 시간이었기에 이에 대해 여쭈어보니 그건 그냥 시간이 잘못 공지된거고 우리가 공지받은 시간보다 10분 이른 시간이 원래 발표 시작 시간이라고 하셨다.
그래서 소정이는 부랴부랴 발표장에 도착해서 제대로 정비도 하지 못하고 발표를 시작해야 했다.
그래도 그동안 봐온 바에 따르면 소정이는 발표를 정말 잘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제 마음을 놓아도 좋지 않을까 조금 기대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실제 발표도 생각만큼 잘 되지 않았다.
심사위원님들은 우리가 만드는 소프트웨어에 대해 꽤 많은 의구심을 가지셨고, 사업화 가능성에 대해서도 상당히 비관적인 질문을 많이 하셨다.
소정이의 후기를 듣고 아마 어렵겠다 생각했다.
대표인 소정이는 회사의 대표이기 때문에 사업이 떨어졌을 때 느낄 책임감이 훨씬 클 것 같았다. 그래서 겉으로는 붙을거 같다. 그리고 떨어져도 괜찮다 같은 말을 했지만 사실 나도 속으로는 꽤 걱정이 많았다.
그래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준비가 부족했거나 발표 과정에서 실수가 있었다면 자책할 거리라도 있었겠지만, 할 수 있는걸 다 했고 그저 심사위원 분들이 우리 소프트웨어 자체에 크게 매력을 못 느끼셨을 뿐이었다. 굳이 따지자면 리티 자체가 문제였다. 어차피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바꿀 수 있는 것이 없기에 결과가 나오면 덤덤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어느정도 탈락에 대해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예상치 못하게 2026년 3월 20일, 최종 선정 통지를 받았다.

심사 결과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우리가 제안한 기술의 방향성이었다. 심사위원들은 우리가 제안한 능동형 AI 컴패니언 시스템이 기존의 수동적인 챗봇과 달리 차별성이 있다는 점을 높게 평가했다.
특히 다음과 같은 기술 요소들이 긍정적으로 평가되었다.
- AI가 먼저 말을 거는 능동형 상호작용 구조
- 사용자 맥락과 감정을 기반으로 한 대화 전략 생성
- 장기 기억을 위한 Vector DB + RAG 기반 메모리 시스템
- 사용자 정보를 구조적으로 관리하는 동적 정보 관리 체계
실제로 우리가 제안한 시스템은 크게 세 가지 핵심 기술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는 대화 트리거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은 시간, 사용자 행동, 이전 대화 맥락 등을 기반으로 “지금 말을 걸면 사용자가 반응할 가능성이 높은가?”를 예측한다. 그리고 그 확률이 일정 기준 이상일 때 AI가 먼저 대화를 시작한다.
두 번째는 전략 기반 대화 시스템이다.
AI는 단순히 문장을 생성하는 것이 아니라
Goal → Topic → Tone → Flow
라는 4단계 파이프라인을 통해 대화 전략을 먼저 결정한다. 그리고 그 전략에 맞게 대화를 생성한다.
즉 지금 당장 할 말을 생성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이끌지,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할지 전략을 세우는 방식이다.
세 번째는 동적 정보 관리 시스템이다.
기존의 RAG 시스템은 정적인 문서 검색에 가깝다. 하지만 사람과의 대화에서는 시간 표현이나 맥락 의존적인 표현이 매우 많이 등장한다.
예를 들어
“내일 시험이야”, “아까 말한 그거” 같은 표현들이다.
그래서 우리는 자연어 대화에서 등장하는 정보를 정규화하고, Knowledge Graph와 Vector DB를 함께 사용하여 관계 기반 메모리 시스템을 설계했다. 이 부분은 일전에 연구용으로 내가 어느정도 만들었던 기억이 있어 좀더 구체적으로 적을 수 있었다.
이 시스템을 통해 AI는 단순히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 정보 간 관계를 유지하고
- 시간이 지나면 중요도를 조정하고
- 미래 대화 주제를 스케줄링
하는 구조를 갖게 된다.
아직 갈 길은 멀지만 그래도 일단 아직 살아있다는게 중요하지 않을까.
스타트업의 절반 이상이 1년을 버티지 못한다는 말을 들었던 것 같다. 이 사업은 2년동안 년에 1억 내외의 금액을 지급하니 삼냥이즈는 그래도 3년차까지는 생명이 연장된 셈이다. 아마 이렇게 되면 투자를 받는 시기나 여부에 대해서도 다시 고민해 봐야 할 것 같다. 지금 당장 돈이 필요한 상황도 아니고, 그렇다고 ROI가 높게 나와서 자본을 투입하면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상태도 아닌 것 같다.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여유가 있는 상황이니 밸류를 잘 키우고 어필해서 팁스 지원 및 성장을 도와 줄 수 있는 투자사에게 시드를 받는게 최선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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